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적막을 깼다.
“아들,”
어머니 목소리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니? 너희 집으로 반찬이랑 이것저것 부쳐놨으니까 나중에 꺼내서 먹어, 또 저번처럼 문 앞에다가 확인도 안 하고 쌓아놓지 말고, 알겠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아마 어머니께 또 똑같은 얘길 하고 계실 것이다. 이제 그만해라, 쟤가 그런다고 알아줄 것 같냐, 웅얼거리는 소리만 넘어오는데도 말씀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건강 잘 챙기고, 집에도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내려와라,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싶으시댄다. 나도 그렇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하고.”
이번에도,
“..... 이만 끊을게.”
뚜- 소리가 방 안을 듬성듬성 채웠다. 핸드폰을 베개 위로 던지곤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머리맡에는 노트북이 빈 한글 파일을 열어놓은 채 커서만 깜빡대고 있다. 장대비에 추적대는 7월의 어느 저녁, 물기를 머금은 더위는 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묵직한 폭염의 기세에 눌려, 한참 이렇게 누워만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가, 거의 사흘쯤 되지 않았나 싶다. 밖에 안 나간지는 또 얼마나 됐더라, 아마 조금 더 오래됐을 것이다. 그때쯤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일어나서, 다시 누워있다가, 다시 잠들고, 또 일어나서, 잠시 뉴스 보다, 밥 먹고, 노트북 켜놓은 채 멍 때리다, 잠들고. 어제같이, 또 내일같이 별 볼 일 없는 하루를 살고 있다.
몸을 돌려 노트복을 바라봤다. 화면은 그새 꺼져있었다. 문득, 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세하게 떨리던 그 목소리, 내 일생을 함께 해주신, 그 목소리. 자판을 두드려 화면을 다시 켰다. 키보드 위에 천천히, 두 손을 올리고, 아까의 그 빈 한글 파일 위에, 아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한다.
어머니, 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있고, 밖에 잘 안 나가는 것 치곤 몸도 건강해요. 그리고, 이제 더 걱정 더 안 해주셔도 돼요. 이미 어머니께, 또 아버지께 분에 넘칠 만큼 받았는걸요. 일도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잘 풀리고 있고, 또, 사람들이랑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두 분 걱정부터 먼저 하셔요. 벌써 나이가 몇이신데, 못난 놈 뒤치다꺼리 하신다고
그만, 키보드에서 손을 털어냈다. 여기서 더 썼다간, 애써 감춰온 추한 모습만 드러낼 것 같다. 노트북을 끄지도 않은 채 화면을 바로 덮었다. 너무 셌는지 크게 턱 소리가 잠시 방을 울렸다. 그대로 원래 자세로 돌아누웠다. 한 팔로는 눈을 가린 채, 다른 팔의 손으로는 이불을 꽉 쥔 채, 그렇게 또 잠을 청했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의 수십 년을 제가 갚아드릴 수 있을까요, 당신의 수십 년 공들인 노력의 결과물이 이거라면, 믿으시겠나요,
하나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던 제가
두 분 곁으로 다가가 꽃이 된 것처럼
다시 그에게 이름 불릴 사람이 되길
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내가 그처럼 무엇이 되길
또 다시 꽃이 되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09. 02 (1) | 2021.09.02 |
---|---|
잠- 2021. 7. 26 (0) | 2021.07.26 |
2021. 06. 18 - 2 (0) | 2021.06.18 |
2021. 06. 18 (0) | 2021.06.18 |
2021. 06. 17 (0) | 202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