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잠- 2021. 7. 26

현관문 앞에 서니 센서등이 문 앞을 밝히며 나를 반겼다. 도어락 여는 소리에 귀가, 문 여는 소리에 입이 트였다. “갔다 왔다.” 습관적으로 입에 붙어버린 말이다. 집에는 정작 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방에는 아침에 개지 않고 나간 이불과 베개가 널브러져 있다. 입고 있던 옷들을 전부 바닥에 팽개쳤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불을 키니 등이 거울에 비쳤다. 타일 사이사이 실리콘에 콱 차게 낀 곰팡이, 바닥에 조금 찬 물이 촐랑거리는 대야, 모기가 알을 까지 않았을까 하며 배수구로 흘려보냈다. 거울에 보이는 건 내 얼굴, 그리고 내 얼굴색과 비슷한 균류뿐이다. 거의 3주간 면도를 안 한 탓에, 인중에는 짧은 수염이 빳빳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솔이 다 떨어져 가는 칫솔에 다 쓴 치약을 꾹 짜서 한 입, 이빨에 비볐다. 푹 패인 눈 밑 살 집힌 선 따라 남색이 내려 와있다. 입으로 거품물을 쏟아내고 입 안을 행궜다. 목에는 아직 가래침이 걸려있다. 화장실 불을 끄곤 아까 던져둔 옷가지 위에 쓰러졌다. 옆으로 돌아간 세상에 내 눈에 비친 건, 재작년 찍었던 가족사진이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 그리고 내 동생. 내가 많이 변했나, 어디서부터 변했나. 주위 사람들은 이제 일 얘기만 할 뿐이야. 그리고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나. 그 탓에 두 눈 사이에 뾰루지가 나 버렸다. 어째 이렇게 변했는지, 짐작이 가는 일들은 있다. 아니, 많다. 어제의 H가 쌓여 만들어진 지금의 H가 바닥부터 조금 썩어있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걸지도 모른다. 내심 인정하고 있을 수도, 그래서 성을 내지 못하는 건가 싶다. 익숙한 감정은 이제 그냥 조금 성가신 고질병처럼 느껴진다. 잠시 내버려 두면, 알아서 물러갈 것이다. 그보다 내일 나가기 위해선, 지금 잠을 청해야 한다. 나는 오늘 또 병이 어서 낫길 바라며 옆의 옷가지와 함께 반듯이 누웠다. 이불로 짜맞춘 관 아래, 도둑같이 들이닥칠 아침 해를 외면하려 또 얼굴까지 덮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0) 2021.09.10
2021. 09. 02  (1) 2021.09.02
20XX. 7. 21  (0) 2021.07.21
2021. 06. 18 - 2  (0) 2021.06.18
2021. 06. 18  (0) 2021.06.18